강아지 포미와 함께했던 만남, 기억, 그리고 무지개다리
16년을 함께 살아왔던 우리 집의 축복과도 같았던 포미가 얼마 전 무지개다리를 건넜습니다.
이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아직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하던데
슬픔을 감추지 않고 앞으로 열심히 추억하고 슬퍼하며 기억할 생각입니다.
# 만남
포미는 1살 때 외가댁 '포천'시에서 데려온 아이입니다. 이름의 유래도 여기에 있어요. 저희 집은 큰 편이 아니라 반려동물을 키우는 것에 대해 금전적으로나 여러 환경적으로 적합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습니다. 저 역시 어렴풋하게 강아지를 키우고 싶어 했지만 금세 마음을 접었죠. 저와는 다른 세상의 이야기인 줄만 알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동생과 어머니가 외가에 다녀오고 나서 불쑥 강아지 한 마리를 데려 왔습니다.
그때 당시 외할머니께서 키우던 강아지가 새끼를 세 마리 낳았는데 너무나 귀여웠나 봐요. 동생이 끝까지 졸라댄 끝에 어머니를 설득시키는 데에 성공하고 강아지를 데려왔습니다. 동생의 손동작에 열심히 호응했던 가장 팔팔한 녀석이었어요. 어머니는 '일주일만 데리고 키우다가 다시 할머니네 돌려주자.'라고 했지만 그 일주일이 어느덧 16년이 되어버렸습니다.
# 기억
'우리 강아지는 왜 귀가 축 늘어져 있냐?'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 말씀이 생각이 나네요. 포미는 나이를 먹고 자연스럽게 귀가 쫑긋 서게 되었어요. 해를 거듭하며 자기주장도 강해지던 포미는 점점 개냥이처럼 도도한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그 또한 너무나 사랑스러웠어요. 간식과 산책 시간에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올려다보는 모습은 정말 영원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강아지는 정서적으로 완벽한 사랑을 평생 동안 준다고 하던데 그 말이 딱 맞는 것 같아요.
여유 없던 생활 속에 우당탕탕 열심히 키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부족함 없게, 못해주는 것 없도록 맞아야 하는 접종 주사도 맞히고 여러 가지 정말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저보다는 동생이 학창 시절 부족한 용돈을 모아가며 몇 배 이상 노력해 가며 포미를 애지중지 키웠던 것 같아요. 당시 저희 가족은 개개인의 일들이 뜻대로 잘 풀리지 않아 인해 분위기가 꽤 어두웠지만, 포미는 우리 가족의 결속력을 높여주는 하나의 빛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 무지개다리
포미는 1번의 자궁축농증 수술로 자궁 1개를 떼어냈고, 15살이 되었을 땐 신장 1개가 제 기능을 못해서 신장도 한쪽을 떼어냈어요. 대수술을 잘 견뎌내고 치료했지만 그 뒤로도 하나밖에 남지 않은 신장 수치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몇 번 병원을 들락거렸어요.
그리고 약 1년 정도 지난 뒤인 지난 설 당일. 심부전, 폐수종 등의 질병으로 포미는 병원으로 급히 향하게 됩니다. 가족들의 출근시간이 들쭉날쭉해서 모두가 모여 어딘가를 갈 수 있는 경우는 정말 손에 꼽을 정도로 어려운데 설 당일 모두가 모여 병원으로 가게 되었고 그로부터 3일 뒤인 주말 아침 포미는 결국 무지개 다리를 건너게 되었습니다.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 다음 날인 일요일, 김포의 펫포레스트라는 곳에서 장례식을 치르고 마지막까지 포미를 배웅해 주고 왔습니다. 옵션 중 수의 착용 여부와 베개 여부가 있었는데 포미는 옷 입는 걸 원체 싫어했고 베개는 항상 좋아했기에 수의 없이 베개만 추가했습니다. 포미의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을 담은 사진들과 화장 직전 관 안에 들어있는 모습을 보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온 가족이 포미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하고 생전에 포미가 좋아했던 간식도 함께 담았습니다. 성분 문제로 간식을 담을 수는 없지만 관과 조금 거리를 두고 함께 화장해 주신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간식은 포미가 노년에 신장수치가 안 좋아지면서 먹고 싶어도 먹을 수 없었던 음식이에요. 그동안 건강식으로만 대체했기에 '먹고 싶었던 만큼 원 없이 먹고 원 없이 뛰어놀았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니 간식 봉투를 뜯는 중에도 눈물이 마구 쏟아지더라고요.
장례 절차를 마치고는 유골함, 액자, 그리고 포미의 네 발바닥을 모두 찍은 발도장 클레이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이소에 가서 폰에 있는 사진들을 인화하고 액자를 추가적으로 구입한 뒤 집에서 추모 공간을 작게나마 만들었습니다. 컴퓨터를 하다가도 고개를 돌리면 바로 볼 수 있어서 언제든 인사하고 추억할 수 있어서 좋은 것 같아요.
아직도 바닥을 타다닥 걸어 다니는 발소리가 들리는 것만 같고 옆을 보면 큰 베개에 누워서 자고 있는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이제 연휴도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겨내야겠지만 포미 없는 일상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지 걱정이 앞서네요.
강아지를 떠나보낼 때 대부분의 주인들은 못해준 것들을 많이 후회하고 미안해한다고 하지요. 포미를 떠나보낸 우리 가족들도 그런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포미와 함께한 시간도 많아서 '이때 행복했지, 이때 이뻤지' 하면서 좋았던 이야기를 나누니 못해준 것에 대한 슬픔보다 기뻤던 기억으로 인한 그리움이 더 커졌던 것 같아요. 지금도 모여서 포미의 갤러리를 계속 쓰다듬으며 추억여행을 함께 떠나고 있습니다. 후회보다는 좋았던 기억을 가슴속에 품으며 살아가려고 노력해보려 합니다.
반려동물의 마지막에 관한 이야기가 많습니다. 동물들의 영혼은 맑고 순수해서 죽으면 죄의 유무를 따지지 않고 곧바로 다음 생으로 환생한다는 이야기도 있고, 먼저 떠난 강아지가 훗날 주인을 마중 나와 기다린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조금 욕심을 부려 어떠한 형태로든 다음번에도 포미를 다시 한번 만나고 싶습니다. 그때를 기다리며 열심히 일상을 살아갈 생각입니다. 그리고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꿈에도 종종 나와줬으면 좋겠습니다. 또다시 한강 공원을 포미와 함께 마음껏 달리고 싶어요.
시간은 유한하고 빠르다지만 반려동물과 함께하는 그 시간은 더욱 유난히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짧기에 더 소중한 그 순간순간을 곁에 있는 반려동물과 함께하며 행복한 추억을 많이 쌓기를 바랍니다.